분노한 2030세대 없는 야당 대표 삭발식 [현장메모]

의원들과 지지자들이 애국가를 따라 부르는 가운데 16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삭발식은 결기로 가득했다. 머리카락이 어깨로 떨어지는 동안 황 대표는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잠시 상념에 빠진 듯 눈을 감기도 했다. 한때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머물렀던 청와대를 등진 그는 한땀 한땀 모근을 심어 기른 머리카락마저 잘라내며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삭발식을 마친 황 대표는 경찰이 둘러친 폴리스라인 밖을 둘러싼 지지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삭발 의지를 나눴다. 평소 같았으면 관광객들이나 찾아올 법한 청와대 앞 분수대까지 찾아온 이들은 대부분이 5060세대였다. 이들은 연신 ‘황교안’을 연호하며 동시에 입에 담기에 거친 욕으로 조 장관과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했다. 하지만 조 장관 가족이 보여준 특권과 반칙에 가장 분노하는 청년들은 현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15일 추석 연휴 마지막날 국회에서 열린 ‘한국당 추석민심 보고회’를 찾은 이들도 당원과 보좌진, 일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전부였다.

“조 장관의 딸이 이력으로 쓴 스펙 하나라도 가져봤으면…” 연휴 때 만난 고향 후배의 토로이다. 하반기 취업을 준비 중인 후배는 학점·영어성적·수상실적·각종 봉사활동으로 가득 찬 조 장관의 딸 이력서를 언급한 기사를 읽어 보고는 “돈도 실력”이라던 정유라가 떠올랐다고 했다. 부모의 사회적 권력이 자녀의 스펙이 된다는 사실이 2030세대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무당층을 흡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국당이 조 장관 임명을 계기로 여권에 실망한 지지층을 포섭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조 장관 임명에 가장 분노하고 있는 2030세대에게 마이크를 주지도, 목소리를 듣지도 않고 있다. 지하철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 숨진 ‘구의역 김군’ 동료는 조 장관 딸의 입시 특혜 의혹에 대해 “‘있는 사람들’끼리의 논란”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있는 사람들’의 편인 한국당의 삭발 투쟁은 결기만 있을 뿐 2030세대에겐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이창훈 정치부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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