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공손과 무례를 규정짓는 기준

영화 ‘친구’에는 1980년대 초 부산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교사가 학업 성적이 낮은 학생 8명을 교단 옆으로 불러 내 두 줄로 서게 한 뒤 나머지 급우 앞에서 훈육하는 장면이 나온다. 교사는 그 학생들을 하나씩 불러 내 “아버지 뭐 하시노”라고 질문하고, 학생의 대답 결과와 관계없이 “공부를 이 꼬라지로 하나”라며 학생의 뺨을 마구 때린다. 부모가 힘들게 일해 너를 공부시키는데 이렇게 낮은 시험 점수를 받았냐고 다그치며, “정신 차려”라고 체벌을 가한다. 시험 점수가 낮아 교실 앞쪽에 불려 나온 학생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다. 그 당시 교사의 훈육을 받는 학생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운동화 앞쪽 끝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것이 기본자세였다. 그래야 진정성 있게 반성하는 것처럼 여겨져 추가 체벌을 받지 않았다.

그때나 요즘이나 미국 학교의 풍경은 이와 사뭇 다르다. 교사가 학업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학생을 나무라는 예는 없고, 교칙 위반 등 어떤 사유로든 체벌은 엄격히 금지된다. 교사가 학생을 훈육할 때도 여러 사람 앞에서 나무라지 않고, 별도 장소로 호출해 일대일로 학생과 눈을 맞추며 훈육한다. 훈육 받는 학생은 고개를 숙여 교사의 눈길을 피해서는 절대 안 되고, 반드시 교사와 눈을 맞추어 경청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 학교에서 훈육 받는 학생이 취해야 하는 행동 자세는 정반대다. 한국 학생은 고개를 푹 숙여야 하고, 미국 학생은 교사와 눈을 맞추어야 한다. 공손과 무례를 규정짓는 기준이 사회마다 다른 것이다. 이는 문화적 상대주의로 설명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의 학교 모습은 약 40년 전 과거와는 크게 다르다. ‘사랑의 매’로 정당화되던 교사의 체벌은 학생에게 고통을 주는 폭력으로 간주해 금지된다.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31조(학생의 징계 등)가 ‘도구, 신체 등을 이용해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서울, 경기, 광주 등의 학생인권조례 역시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올해 5월 정부가 발표한 ‘포용국가 아동정책’에는 가정 내 체벌을 없애기 위해 민법 제915조 ‘친권자의 징계권’을 개정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부모가 자녀의 그릇된 행동을 ‘징계’할 수 있다고 돼 있는 민법 규정을 삭제해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매’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아이가 어떠한 폭력으로부터도 자유로울 권리’를 제도화해 실천하려는 시도는 국제인권규범에 비추어볼 때 지극히 바람직하다. 즉, 이제는 학교와 가정에서 체벌이 아닌 다른 방식의 훈육이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한국인은 ‘좋게, 말로, 인격적으로 교육하고 양육해야 한다’는 원칙은 이해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양한 기관과 매체를 통한 교사·부모 교육이 필수다. 그 내용에는 훈육하는 교사·부모와 그것을 경청하는 아이의 행동 자세를 재정립하는 것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교사·부모와 아이 간 사회적 관계가 위계적인 것에서 수평적인 것으로 변모한 사회의 성격을 반영해야 한다. 문화변동, 즉 문화를 재창조하는 역동성은 보편적 현상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허블검색
허블검색
허블검색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