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의맛깊은인생] 기내식을 먹으며
기내식을 처음 먹어본 것은 대학 4학년 때였던 것 같다. ‘같다’라고 쓴 것은 그 기내식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 4학년 때 중국으로 첫 배낭여행을 떠났는데, 그때 베이징으로 가는 국제선 비행기를 처음 탔고(비행기를 탄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국제선이니 아마도 기내식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기내식은 기억나지 않지만 비행기를 처음 탔을 때의 느낌은 생생하다. 이토록 거대하고 무거운 쇳덩이가 어떻게 허공 중에 떠오를 수 있을까 하고 마냥 신기해했고 창 밖으로 흔들리는 날개를 보며 혹시나 추락하지 않을까 무서웠다.
이후 여행작가로 살아가며 기내식을 자주 먹어야 하는 인생을 살게 됐다. 일본 또는 중국으로 가는 단거리 노선의 경우 간단한 샌드위치나 스낵이 나오고 유럽이나 미주, 아프리카 등지로 가는 장거리 노선은 3끼 또는 4끼를 비행기에서 해결해야 한다. 단거리 노선이야 괜찮지만 장거리 노선의 경우, 솔직히 말하자면 기내식을 먹는 일은 약간 고역이다. 좁은 이코노미 좌석에 아홉 시간 길게는 열 네 시간이나 몸을 뒤척이며 앉아 매끼 꼬박꼬박 챙겨먹는 일은 즐겁지만은 않다. 뱃속은 더부룩하고 몸이 붓는다.
그렇다고 기내식이 맛있는 것도 아니다.(비즈니스석이나 일등석은 물론 아니겠지만) ‘치킨 오어 비프?’ ‘누들 오어 라이스?’ 대부분의 기내식은 이 두 가지 중에 하나다. 초보 여행작가 시절에는 어느 게 더 맛있을까 궁금해하며 옆사람 앞사람의 것을 기웃거리며 뭘 먹을까 고민도 했지만 지금은 뭐 그냥 아무거나 주문한다. 이십 년 동안 기내식을 먹어본 여행작가의 소감은 ‘기내식은 그냥 기내식일 뿐이다’다.
언젠가 이 지면에 호텔 조식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여행을 떠난 호텔에서는 아침에는 꼭 크루아상과 커피를 먹는데, 그때마다 “이제 나는 여행을 떠나온 동안 내가 생활하고 있었던 ‘저쪽 세계’의 여러 가지 골치 아픈 일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 되었다”고 느낀다고 했다.
기내식은 그와는 정반대의 기분을 들게 한다. 좌석 테이블에 공책만 한 크기로 올려진 기내식 쟁반. 얇은 은박지 포장을 벗기면 간장에 볶아진 쇠고기와 하얀 쌀밥, 당근과 감자가 몇 조각 들어 있다. 한쪽에는 디저트용 케이크와 샐러드, 비닐에 싸인 주먹만 한 빵 한 덩이가 놓여 있다. 승무원에게 와인 한 잔을 부탁한 후 첫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는다. 이십 년 동안 먹어왔던 익숙한 맛이다. 그냥 기내식 맛이다. 아무런 선의도 깃들어 있지 않고 배려도, 격려도 없다.
기내식을 먹으며 여행이 아니라 취재를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일부터 고단한 하루하루가 이어지겠지.’ 많은 사람들이 프리랜서의 생활을 자유롭다고 부러워하지만 이십 년 프리랜서 생활을 하며 깨달은 건 프리랜서나 직장인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자리를 부러워할 뿐이다. 어떤 이에게 기내식은 설레는 음식이지만 어떤 이에게 기내식은 다만 비행기에서 섭취하는 칼로리일 뿐인 것이다.
최갑수 여행작가